[배국남의 직격탄] TV의 인문학 열풍이 인문학 죽인다

입력 2017-06-2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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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전철의 젊은 남자 승객이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뜰신잡)’을 보며 연신 웃는다. 대학생들은 jtbc ‘차이 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에서 방송한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의 세대갈등 담론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시청자들은 KBS ‘서가 식당’ 등에 “인문학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유익하고 재밌다”라는 의견을 연이어 표명한다. TV의 인문학 열풍이다. 기업부터 지방자치단체, 취업 학원, 출판계까지 휩쓴 인문학 선풍이 이제 TV 화면을 강타하고 있다.

“애플의 DNA는 기술력만으로 충분치 않다. 교양과 인문학이 결합한 기술이야말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결과를 만든다.” 최근 한국의 인문학 열풍을 몰고 온 언표(言表)다.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2011년 3월 제품 설명회에서 한 이 말은 기업의 입사 시험과 면접에서 인문학 지식을 묻는 것을 주요한 트렌드로 만들었다. 수많은 지방자치단체는 인문학 강좌를 마련하며 앞다퉈 인문학 도시를 표방했다. 출판계는 100만 부가 팔려나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을 비롯해 다양한 인문학 서적을 쏟아냈다.

TV가 돈과 직결되는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소재를 놓칠 리 만무하다. TV는 2010년대 들어 김미경, 최진기 등 스타 강사의 강연 쇼를 방송하더니 최근에는 철학, 역사, 문학, 미술, 문화 등 인문학과 예능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양산하고 있다.

적지 않은 대중과 전문가는 TV가 딱딱하고 난해한 인문학을 다양한 예능 장치로 잘 포장해 인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찬사를 보낸다. 심지어 TV가 ‘바보 상자’에서 ‘지식 상자’로 변화하고 있다는 극찬까지 아끼지 않는다.

TV의 인문학 열기를 체감하면서 영남대 박홍규 교수가 ‘인문학의 거짓말’에서 행한 “인문학은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입시 논술이나 취업 준비, CEO의 조찬 교양이나 유한부인의 명품 교양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질타가 공감되는 것은 어인 일일까.

인문학은 인간 근원의 문제를 다루며 인간을 성찰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와 비판적 사유를 통해 나와 타자(他者), 그리고 세계에 대한 다면적이고 깊은 이해를 하게 한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월터 카우프만 교수는 ‘인문학의 미래’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로 인류의 역사와 업적의 습득, 지금과 다른 대안에 대한 관심, 비전과 비판적 정신의 획득을 꼽았다.

TV 프로그램들은 인문학의 본질과 의미를 거세한 채 신기한 정보 나열, 말랑말랑한 교양 지식 현시(顯示), 명쾌한 요약과 해답 제시를 인문학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인문학을 전면에 내세운 TV 프로그램에선 인문학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인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찾기 힘들다. 이 때문에 상업화로 치닫고 있는 TV의 인문학 열풍은 결과적으로 ‘인문학의 대중화’가 아닌 ‘인문학의 사멸화’를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인문학을 표방한 TV 프로그램이 엄청나다. 인문학의 가치를 중시한다고 선언한 기업이 넘쳐난다. 인문학 도시를 자처하는 지자체는 급증한다. 인문학 진흥사업을 펼치는 정부도 요란하다.

이처럼 인문학 광풍(狂風)이 강타하고 있는 2017년 대한민국에서 왜 대학은 문학, 철학, 사학, 예술 등 인문학 관련 학과를 하루가 멀다 하고 폐지하는 것일까. 왜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이 시대의 유행어로 떠오른 것일까. 왜 ‘교양과 인문학이 결합한 기술’은 공허한 구호로만 그치는 것일까. 왜 획일화한 사유와 규범 강요, 물질 중심, 사회적 지위와 경쟁 집착 등 반(反)인문학적 행태들이 횡행(橫行)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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