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이 앞의 앞 총리가 누구였지?”

입력 2017-06-1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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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정책실장

얼마 전 출판한 책에 소개한 장면이지만 한 번 더 보자. 18대 대통령 인수위 시절, 그러니까 박근혜 정부가 출범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종편에서 4명의 시사평론가가 새 정부의 첫 총리 인선 문제를 토론하고 있었다.

사회자가 갑자기 궁금해진 듯 물었다. “현 정부, 즉 이명박 정부의 첫 총리가 누구였죠?”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모두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결국 사회자가 제작진에게 누구였는지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몇 분 뒤, “아! 한승수 총리라 하네요.”

특정 총리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총리가 그렇다. 스스로 물어보라. 이 앞의 앞 총리가 누구였지? 또 그 앞은? 하마평에다 청문회로 세상을 흔들어 놓지만 막상 자리에 앉고 나면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된다. 퇴임 후 몇 년이면 이렇게 시사평론가들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예외적인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연립내각이나 거국내각을 전제로 한 총리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그런 예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연정 형태를 띠었던 김대중 정부에서의 김종필 총리가 그에 근접했을 정도이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 또 한 번 있을 뻔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것저것 다 접어두고 이왕에 있는 자리,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우리와 같이 안보 문제가 심각하고, 경제와 사회 모두에 있어 근본적 개혁과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총리가 일상적인 문제들을 책임져 주는 가운데 대통령이 이러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흔히들 대통령이 총리에게 그럴 수 있는 힘을 부여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부질없는 이야기이다. 권력과 권한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놓거나 넘겨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넘겨받았다고 해서 이를 ‘눈치 없이’ 자기 뜻대로 행사할 총리도 없다.

가장 좋고 자연스러운 방법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 즉 대통령이 아니면 하지 못할 ‘대통령 과제’를 잘 정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총리가 처리해도 좋을 일상적인 국정은 관심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게 된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즉 대통령이 일일이 다 챙겨야 뭔가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보 문제와 산업구조 조정의 문제 등 우리 앞에 놓인 어렵고도 어려운 과제를 봐라. 대통령이 일상적 현안이나 민원을 챙기고, 크고 작은 행사를 쫓아다닐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있겠나.

결론적으로 그렇다. 유능한 대통령일수록, 또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은 대통령일수록 총리가 총리로서 역할을 하게 한다. 총리가 해도 좋을 일에 나서지 않는다. 그래야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리 역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어디에서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에서 어디까지 일해야 대통령이나 청와대와 마찰이 없을지를 늘 판단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범위 안에서나마 큰 소리로 말할 수 있고 보기 좋게 행동할 수 있다. 또 그래야 내각에 대한 지도력이 생긴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헌정체계 아래에서는 별 도리가 없다. 제아무리 잘해도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그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거나, 그가 한 말을 한두 번 뒤집으면 그 순간 바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대통령이나 청와대 참모들과의 공식, 비공식의 다양한 소통과 협의의 채널을 갖추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과제일 것이고, 총리실의 정책적 역량과 행정적 역량을 높여 대통령과 청와대의 신뢰를 얻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정부 출범 초기라 그러하겠지만 총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각 인사를 하는 데는 물론 크고 작은 정책 사안의 처리나, 심지어 민원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총리의 역할을 느낄 수가 없다. 온통 대통령과 청와대의 역할만 눈에 들어온다. 행여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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