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이 만난 사람]정성진 전 법무부장관 “국민의 자유·권리 지키는 검찰로…개혁은 시대적 대세”

입력 2017-06-0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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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 오·남용 ‘정권의 도부수(刀斧手)’ 비판…겸허히 수용해 질적변화 계기로 삼아야

정권이 바뀌고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는 몸살을 앓는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지금도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법무부장관도 검찰총장도 없는 ‘업무 진공’ 상태에서 검찰개혁은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공정한 법 집행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채 정치검찰, ‘정권의 도부수(刀斧手)’ 노릇(조국 민정수석의 2년 전 트위터 글)을 해왔다는 비판과 질타가 어느 때보다 거세다. 특히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비롯한 검사 출신들의 국정 농단 간여나 비리, 돈봉투 만찬 논란 등으로 검찰을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크고 넓다.

검찰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며 검찰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해묵은 과제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대검 중수부장, 총무부장과 법무부 기획실장, 장관 등을 역임한 정성진(鄭城鎭·77)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지난달 29일 만나 의견을 들어보았다.

▲개인 연구실 청눌재(淸訥齋)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정성진 전 법무부장관. ‘맑게, 어눌하게’ 세상을 살자는 다짐이다. 이동근 기자 foto@
▲개인 연구실 청눌재(淸訥齋)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정성진 전 법무부장관. ‘맑게, 어눌하게’ 세상을 살자는 다짐이다. 이동근 기자 foto@

법무부와 검찰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을 법조계 인사가 누굴까. 몇 사람에게 물으니 예상대로 정 전 장관을 첫 번째로 꼽았다. 직함이 다양한 그에게 “무어라고 부르는 게 좋으냐”부터 묻자 장관, 총장(그는 국민대 총장을 역임했다), 위원장보다 그냥 선생이라고 불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요즘 검찰 후배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고 안됐다는 느낌도 있는데, 그런 동정적인 표현보다는 어떻게 하다가 대한민국 검찰이 공익을 지키기는커녕 이렇게 지탄의 대상이 되었나 싶습니다. 검찰은 원래 프랑스혁명 이후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아니라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수단으로 출발한 것인데,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검찰에 당한 경험, 즉 울분과 분노가 작용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분의 성품으로 보아 그런 것보다는 검찰을 포함해 힘 있는 기관, 누리던 기관들의 세(勢)를 좀 죽여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향하려는 선의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문 대통령은 성실하고 선량한 분입니다. 아주 독한 사람이 아니에요. 민주적인 사회, 시민의식에 맞는 사회로 나가기 위한 조치라고 봅니다.”

△취지는 그렇다 해도 추진과정에 문제가 있지는 않나요?

“검사로 25년 근무했으니 공평하지 않은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검찰이 권한을 오·남용함에 따라 국민이 피해를 입었다, 검찰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하면서 지켜봤고, 변호사 활동하면서 또 봤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검찰이 나아진 게 없고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싶습니다. 검찰이 자성해야 할 점이 많아요. 제 경험에 비추어 큰 물결이 올 때는 개인이 거스를 수 없습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질적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검찰개혁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무엇인가요?

“첫째, 궁극적으로 국민의 이익을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둘째, 법과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하는 문제와, 인사 등 운영의 개선을 통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문제를 구별해야 합니다. 검찰권에 대한 견제를 명분으로 권력기관 간의 갈등 요인 등 새로운 부작용을 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날 상식과 균형을 잃은 법 집행으로 많은 국민이 피해를 당했지만 검찰을 마음껏 비판하되 결코 죽여서는 안 됩니다. 결국 우리 검찰이지 누구 검찰입니까?”

△검찰개혁의 한 방편으로 법무부장관을 비법조인이 맡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려운 문제라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법무부장관에게는 검찰총장에 대한 일반적 지휘감독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비법조인의 지휘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 원칙, 이런 기본 토대 위에서 문제점을 고쳐 나가야 하니 쉽지 않은 겁니다. 이론적으로는 못할 바 없고 시험으로서는 좋고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그동안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조국 서울대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기용한 데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른 자리에서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한 민정수석에 전직 검사들은 부적절하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검사 출신들은 합리적이고 분석적이지만 종합적 안목이나 국정 조정업무와 관련된 경험과 단련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력기관 간의 대표적 갈등인 검-경 수사권 쟁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이것도 오래된 문제인데, 검찰과 경찰이 독일처럼 수사협정 같은 걸 맺어 서로 자신의 업무에 충실토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패사범, 조직범죄, 반국가사범, 마약사범과 같은 중대 범죄는 검찰의 지휘를 받게 하고 강·절도를 비롯한 일반 범죄 수사는 경찰에 맡기는 거지요. 경찰도 역량이 커졌으니 넘길 것은 넘기고 검찰 수사력을 낭비하거나 남발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경찰은 새 정부가 강조하는 대로 인권에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법원과 검찰도 그리 편한 관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법원과 검찰은 거의 자격이 같고 대우가 비슷한데, 근래 성적 우수자는 법원에 가고 조금 떨어지는 사람들이 검찰에 가는 경향이 있어요. 또 법원은 판단을 하고 검찰은 소추를 하는 기관인 데다 검찰은 자꾸 바뀌어 상대적으로 연령이 낮다 보니 법원이 검찰을 좀 낮춰 보는 것 같습니다. 법원은 고법 부장판사가 차관 대우, 검찰은 검사장이 차관 대우를 받고 있지요. 이런 차이는 어차피 한번 정리되겠지만, 검찰은 법원과의 경쟁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은 이제 기정사실이 된 거지요?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요즘 흔히 강조되는 ‘디테일’이 문제입니다. 이건 말하자면 특별검찰청을 하나 신설하는 건데, 조직 인력 예산, 하부기관이나 다른 기관과의 관계 등 세밀한 연구와 준비가 필요합니다. 총론은 공감하지만 법안을 만들고 제출하려면 간단치 않은 문제들이 많으니 정밀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그는 1993년 대검 중수부장으로 발령받은 직후 공직자 재산 공개 때 순전히 재산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물러난 일이 있다. 그 뒤 외국 유학을 통한 퇴수(退修)를 했고, 이를 계기로 국민대 교수와 총장으로 일하게 됐으니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학 총장으로 정년퇴직한 후에는 부패방지위원장, 국가청렴위원장으로 봉직했고 노무현 정부 말기에 단기간이었지만 법무부장관으로서 공정하게 대선을 관리했다.

△요즘 국가청렴위원회 부활도 논의되고 있는데, 국가의 청렴도를 높인 게 큰 보람이겠군요.

“그때 참 의욕적으로 일했습니다. 50점이 안 되던 CPI(부패인식)지수가 3년 임기 마치고 나온 뒤 56점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이후 국가적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관심이 없고 홍보도 하지 않으니 나아질 리 없지요. 부패를 없애고 국가 청렴도를 높이는 것은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니 대통령이 계속 챙기고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4월에 대법원 양형위원장(임기 2년)을 맡았으니 10년 만의 공직 복귀인가요?

“각종 죄명 가운데 거의 90%는 양형기준이 만들어졌습니다. 나머지 10%를 채우는 게 앞으로 할 일입니다. 양형기준의 준수율은 약 90%나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도덕윤리를 실정법보다 앞세우는 경향이 강해 법치주의 정착이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런 간격을 메우는 게 양형위원회가 주력해야 할 일입니다.”


◇ 정성진 前 장관은…

겸허하고 청렴한 ‘법조선비’…스스로 ‘淸訥齋’ 당호 지어

▲‘끝없이 갈고 닦아야 강해진다’는  뜻의 ‘백련강(百鍊剛)’.
▲‘끝없이 갈고 닦아야 강해진다’는 뜻의 ‘백련강(百鍊剛)’.
정 전 장관을 인터뷰한 장소는 서울 충무로의 개인 연구실 청눌재(淸訥齋). 맑은 마음과 생활, 말을 더듬을 정도의 겸허(謙虛)와 경건(敬虔)을 지향하는 뜻을 담고 있다. 스스로 당호를 지은 이 연구실의 벽에는 ‘백련강(百鍊剛)’, 끝없이 갈고 닦아야 강해진다는 말도 걸려 있다.

호를 정암(定庵)이라고 지은 정 양형위원장은 2001년 정암 형사법학술상을 제정, 운영해오고 있다. 분수를 지키며 정성을 다하라는 수분지성(守分至誠)이 생활신조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출처(出處)의 도(道) ‘출즉유위 처즉유수(出卽有爲 處卽有守)’, 나아가면 하는 일이 있어야 하며 물러나면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말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그는 장관 취임식에서 “법은 사랑과도 같아 사랑처럼 어디에 있는지 왜 있는지 알지 못하고, 사랑처럼 억지로는 안 되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는 영국 시인 W. H. 오든의 시 ‘법은 사랑처럼’을 낭독했다. 이임식에서는 “산을 바라보기 위해서는/반드시 산을 내려와야 하고/사막을 바라보기 위해서는/먼저 깊은 우물이 되어야 한다”는 정호승의 시 ‘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를 인용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 일부 신문에 대구 출마설이 보도되자 아예 팩시밀리로 “절대 정치 안 합니다”라고 신문사마다 알렸던 정 전 장관은 다시 대학에 입학하면 법대로 진학하지 않고 역사나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자 없는 공직생활, 교직생활로 두루 신망을 쌓아온 그는 ‘법조선비’로 불린다. 어느 분야든 대가는 다 겸손하다. 그는 시종 겸허하고 여유로웠다.

<약력>

1940 경북 영천 출생.

경북고, 서울대 법학과 및 대학원 졸. 경북대 대학원 박사

1964 사시 2회 합격

1987 제주지검장

1992 대구지검장

1993 대검 중수부장

1995 국민대 교수

1996 중앙선관위원

2000 국민대 총장

2004 한국법학원장

2004 부패방지위원장

2005 국가청렴위원장

2007 법무부장관

2017 제6기 양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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