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말과 일을 잘 조화시키는 대통령

입력 2017-05-2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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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맞춤법 파괴 장난을 하는 아이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일해라 절해라 하지 마세요”라고 쓴 걸 보았다. 처음엔 우스웠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중요한 메시지를 담은 말 같았다. 사실 일과 절은 인간생활의 전부다. 일이 실질이며 활동이며 생업이라면 절은 말이며 이념이며 명분이다. 일이 사판(事判)이라면 절은 이판(理判)이다. 명분과 실질은 상부(相符)해야 하고 이판과 사판은 서로 잘 조화돼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를 운영하거나 회사나 단체를 이끌어가는 일 모두에 해당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다. 나날이 파격의 연속이며 감동의 시리즈다. 문 대통령의 행보는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럴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얼마나 나쁜 대통령이었는지 다시 알게 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파격이 특히 필요한 것은 인사(人事)다. 파급효과와 낙수효과 개혁효과가 가장 큰 게 인사행정이다. 그래서 전 정권에서 배척된 사람을 다시 중용하고, ‘그 자리는 이런 사람들 차지’라는 기득권과 고정관념을 깨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적재적소(適材適所)의 기용을 하려면 일정한 제도화, 관행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다. 최종 인사권자의 눈과 귀가 바르지 않으면 그 경우의 제도는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고 한 세종대왕은 인재 기용과 국정 운영에서 배워야 할 점이 참 많은 군주였다. 왕과 신하가 함께 공부하면서 회의하는 경연(經筵)을 세종은 말과 일을 엮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즉 말을 맡은 언관(言官)과 일을 주관하는 정승, 말과 일을 함께 담당하는 승지를 모두 참여시켜 치열하게 토론하고 연구했다. 세종은 영의정에 대해 일과 함께 말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세종 당시에 ‘인재를 구해서 쓰는 법’에 대한 책문(策文)으로 장원급제한 강희맹(姜希孟)의 생각이 세종과 같다고 보면 된다. 1)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으니 적합한 자리에 기용해 인재로 키워야 하며 2)전능한 사람도 없으니 적당한 일을 맡겨 능력을 기르게 하고 3)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는 게 인재를 구하는 기본 원칙이라는 것이다.

탐욕스럽지만 일은 잘하는 경우, 청렴하지만 무능한 경우 모두를 아우르는 인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원칙에 따라 인사를 하면 재임기간에 큰 실수가 없을 것이고, 나라와 국민의 활력이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인사는 그렇게 한다 하고, 전반적인 국정기획은 어떻게 해야 하나? 22일 공식 업무를 시작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6월 말까지 정책로드맵을 마련하고 7월 초 대통령에게 보고할 계획이라고 한다. 위원회는 문 대통령 임기 중에 해야 할 일만 논의하기보다 대한민국의 장기적 과제를 함께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전 정권의 일 중에서 계승하는 게 바람직한 것은 받아들이면서,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 추진할 만한 것을 제시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녹색성장(이명박 정부)을 창조경제(박근혜 정부)로 바꿔야만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5년 동안에 완수하기 어려우니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 추진하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밝히고 일을 시작해보라. 5년 안에 뭔가 기념비적인 걸 이루어내려고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행사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같은 날 박 전 대통령은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나왔다. 문 대통령을 대통령이 되게 만든 건 노 전 대통령과의 운명이지만 지금부터는 자신만의 운명이 전개된다. 박 전 대통령을 넘은 문 대통령은 이제 노 전 대통령도 넘어야 한다. 말과 일을 잘 엮고 조화시키는 대통령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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