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이번 대선에도 문화는 없나

입력 2017-04-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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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대선 TV토론회는 예상대로 기대 이하, 수준 미달이었다. 23일 토론회에서 후보들은 주제와 동떨어진 입씨름과 수준 낮은 문답으로 토론회의 격을 스스로 떨어뜨렸다. 벌겋게 상기된 채 볼멘소리를 하거나 날선 표정으로 자기 말만 하는 모습을 보며 실망스러웠다. 끝난 뒤 다들 자기가 잘했다고 했지만, 토론회의 수준에 만족한 후보는 하나도 없었다.

1, 2위 후보가 하위 후보들과 함께 토론하는 방식이 근본 원인일 수 있다. 선거일은 촉박한데 반전의 계기를 잡기 어려운 후보로서는 1위 후보에 대한 공격과 흠집 내기를 통해 상황을 바꾸려 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약세 후보들의 공세가 토론회를 지배하게 된다.

사회자의 역할이 거의 없는 점도 저질 토론의 원인일 수 있다. 후보들끼리 토론을 하도록 맡기고 시간 관리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사회자는 그저 서 있기만 하게 되는 꼴이다. 상당한 지명도와 공신력을 인정받는 사회자가 책임을 맡아 공정하되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진행을 해야만 시청자들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서서 토론(‘스탠딩 토론’이라는 말은 싫다)을 하는 형식상의 변화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내용과 수준이야 어떻든 정치분야는 23일에 다루었으니 이제 중앙선관위 차원의 토론으로 남은 건 경제, 사회분야 두 가지뿐이다. 25일 밤 열리는 jtbc 토론회는 후보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토론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편안하게 앉아 얼굴을 마주 보고 토론한다니 이전보다는 좀 나은 공방이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어쨌든 진행 방식을 더 연구하고 세심하게 진행해야 한다. 예컨대 경제분야라면 각 후보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주요 쟁점을 추려 시간 제한 없이 토론하게 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대신 질문권은 균형 있게 배분해야 한다. 각 분야의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은 같을 것이므로 과거 이야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과거 문제로 논란을 벌이는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 실천 방안에 초점을 모아야만 의미 있는 토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질문이 하나 있다. 왜 후보들은 문화를 이야기하지 않으며 문화분야 토론은 열리지 않는가. 후보들의 문화정책 공약이 없는 것도 의아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경제분야에 이어 사회분야 토론을 할 때 문화 이야기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양념이나 구색 갖추기로 끼워 넣는 것이지 문화 자체를 이야기하는 토론은 아니다.

더욱이 그 토론은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정부의 문화예술계 지원 문제를 둘러싼 치고받기로 끝날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나온 말을 옮기면 “우리만 그랬나? 당신들은 더 했지”라거나 “정부가 반정부적인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 아냐? 그러지 않는 나라 있어?” 이런 입씨름 말이다.

그러니 문화토론회를 하되 문화 본연의 정책에 관해서, 예술진흥에 대해서, 후보들의 문화관과 문화생활에 관해서 말하게 하라. 그들은 뭘 읽고 자랐으며 무슨 음악을 듣고 있으며 그들 주변에 어떤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있는지 알게 해 달라. 나라를 대표해 일할 사람의 교양과 문화?예술감각이 어떤지 국민들은 알고 싶고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어법에도 맞지 않고 문장도 되지 않는 말과 글을 구사하면서도 국민을 잘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는 대통령들 때문에 시달려왔다. 그리고 창피스러웠다. 필요하면 즉석에서 좋아하는 시를 외우게 하든지 국민이나 예술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써 내라는 ‘작문시험’을 볼 수도 있다. 보는 국민들도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할 것이다.

문화만을 주제로 대선 토론회를 하는 사례는 외국에도 없다고? 그거 잘 됐다. 없으면 더 좋다. “이게 나라냐?” 하고 외쳤으니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다”라고 알리는 차원에서라도 더 추진했으면 한다. 짧은 기간에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에 성공해온 대한민국은 이제 문화화를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대선 문화토론회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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