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봄과 어머니

입력 2017-04-1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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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무식했다. 이름도 쓰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아랫동서는 대구 경북여고를 나온 재원이었다. 동서의 거울 옆에는 세일러복을 입은 여고생의 사진이 붙어 있다. 어머니는 그 사진 보는 일을 괴로워했다. 그러나 딸들에게 작은집 심부름을 시킬 때 꼭 그 사진을 보고 오라고 하셨다. 갈망을 가지라는 것.

어머니의 성공은 곧 숙모님이다. 더도 덜도 아닌 숙모같이만 되라 하셨다. 성공의 정점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숙모님이 가진 것을 하나도 갖지 못했다. 학력 인물 인품…. 그리고 큰며느리였던 어머니는 딸이 여섯 아들이 하나였지만 숙모님은 아들이 여섯 딸이 하나였다. 치명적인 차이다.

거기다 숙부님은 국회의원까지 했으니 숙모님을 사모님이라 사람들은 불렀다.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높이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신의 딸 중에 동서보다 높은 딸을 만들기로 인생 개선안을 마련했다. 1955년 전쟁의 상흔이 다 가시기도 전에 셋째 딸을 산골 시골에서 마산여고로 보냈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당장 데려오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 넷째 딸을 마산여고에 입학시켰다. 그 딸들은 졸업하고 모두 결혼해 버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회적 욕구에 포기는 없었다. 다섯째 딸을 부산으로 보냈다. 마산은 터가 나쁘다는 것이다.

부산으로 가는 차부(車部)에서 어머니는 당부했다. “죽을 때까지 공부해라. 돈도 벌어라. 여자로서 행복해라.” 어머니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다. 내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 조교를 할 때 어머니는 딸의 성공이 바로 옆에 있다고 믿는 듯했다. 가능성의 시인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희망은 거기까지다. 어머니의 전 인생이었던 다섯째는 결혼 후 나락으로 떨어졌고, 남편의 졸도로 중환자실에 오래 머물렀다. 그때 그 충격으로 몇 달 만에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세상에서 젤 불쌍한 여자 나오라면 그 딸이 걸어오겠다” 라는 충격의 말을 남겼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혀를 물고 고난을 견디었다. 박사를 하고 교수를 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했다.

다섯째 딸은 어머니가 여자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냥 밥하고 빨래하는 엄마, 딸들을 못살게 구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머니의 옷장에는 비단으로 만든 이불이 색색으로 놓여 있었고 곱게 수(繡)를 놓은 베개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결코 그 베개나 이불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머니가 눈으로 즐기는 꽃밭이었던 것이다. 그 꽃밭은 어머니의 ‘여자’를 표현하는 유일한 꽃밭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새벽 3시 어머니가 마루에서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자주 집을 비운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새벽 3시의 모습은 바로 ‘여자’를 상기시켰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여자라는 것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세월이 흘러서야 알았다. 딸들이 나이 먹고 그렇게 혼자 하늘을 바라볼 때쯤 어머니가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여심만심(女心滿心)의 어머니가 저 봄꽃 속에 살아 있으리. 그토록 좋아하시던 꽃들이 만개(滿開)했는데 어찌 살아 오시지 않겠는가. 이 현란한 봄 속에 어머니가 이젠 늙어 고요한 딸을 보고 웃으실라나. 저 꽃들 속으로 어머니와 함께 걸어 보고 싶다. 활짝 웃으시는 어머니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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