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설날 아침에

입력 2017-01-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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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40여 년 동안 권력 핵심부에 있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두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수의를 입었다. 화려한 스펙과 경력을 자랑하던 조윤선 전 문화부 장관은 장관 배지 대신 구치소 수용자 번호 배지를 달았다. 소설가인 이화여대 류철균 교수는 구치소로 향했다. 양심과 정의를 외면하고 권력과 지위, 자본을 탐한 최순실, 차은택, 김종덕, 김종, 김경숙, 이인성 등 많은 사람의 구속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tvN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한 神-도깨비’는 시청자, 특히 수많은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21일 막을 내렸다. 마지막 16회 시청률이 20.5%로 케이블TV 방송 사상 첫 20%대를 돌파한 ‘도깨비’는 죽음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판타지 로맨스로 잘 버무리고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를 비롯한 수많은 대사, 공유 김고은 이동욱 등 주연들의 매력적인 캐릭터 연기로 많은 시청자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다.

권력과 지위, 돈만을 좇다 몰락한 현실 속 군상을 목도하면서, 그리고 운명과 죽음마저 가로막지 못하는 절절한 사랑을 한 드라마 속 주인공들을 보면서 소유(所有)에 모든 것을 거는 우리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이종오 전 계명대 교수가 ‘한국의 개혁과 민주주의’에서 비판하듯 한국 엘리트의 상당수는 ‘좋은 학벌을 획득한 벌거벗은 경쟁의 승리자들’로 천민 엘리트다. 구속된 김기춘, 안종범, 조윤선, 김종덕, 김종, 류철균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엘리트뿐이랴. 많은 사람이 자본과 권력을 최고 가치로 여기고 사람의 등급을 돈과 지위로 매기는 천민자본주의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많은 돈, 더 강력한 권력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2017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불행한 사태와 현실의 문제들이 바로 자본과 권력을 향해 브레이크 없는 무한 질주를 하는 삶의 방식에서 비롯됐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을 통해 행한 권력과 자본 등 소유에 초점을 맞춘 삶의 문제에 대한 경고는 천민자본주의의 폐해가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프롬은 물질적 소유, 권력, 지위, 지배에 초점을 맞추는 소유 양식이 사랑과 공유, 창조적 생산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 양식을 압도하면서 인간과 사회에 위기가 초래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소유 양식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사랑을 할 수 없다고까지 비판한다.

권력과 자본을 좇았던 김기춘, 조윤선 등 천민 엘리트의 몰락과 절절한 사랑을 담아낸 ‘도깨비’ 신드롬이라는 사뭇 다른 풍경의 목격 속에 설날이 성큼 다가왔다. 설을 앞두고 두 풍경을 마주한 올해는 시인 김종길의 시 ‘설날 아침에’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매양 추위 속에/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따뜻한 한 잔 술과/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그것만으로도 푸지고/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세상은/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한 해가 가고/또 올지라도/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고운 이빨을 보듯/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시처럼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도 푸지고 고마운 것으로 생각하며 사는 삶의 태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돈과 권력 등을 지상 목표로 삼는 소유 양식의 삶이 수많은 국민을 불행과 고통으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사랑마저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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