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학산책] ‘우리’의 나라, 대한민국

입력 2017-01-0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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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국문과 교수

빛과 어둠, 참과 거짓의 교차

지난해에 우리는 참으로 가파르고도 아득한 국가 이미지 추락의 시간을 경험하였다. 최고 권력이 빚어낸, 이 바닥 없는(bottomless) 추문의 연쇄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긍정적 이미지들을 한순간에 지워나갔다. 다행히 권력에 맞선 이들이 보여준 저항의 내용과 형식이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품격을 그나마 지켜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올해도 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비루한 권력의 잔재와 힘겹게 싸워야 할 것이다. 배우 차인표 씨가 어느 시상식장에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 남편은 아내를 이길 수 없다”라는 멋진 말을 했다는데, 과연 우리는 ‘빛/진실’이 ‘어둠/거짓’을 이기는 세월을 맞을 수 있을까?

4·19혁명의 위대한 빛 뒤에 군사독재의 어둠이 바로 따라왔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잠시 뿌렸던 빛을 신군부의 더 큰 어둠이 바로 삼켜버렸고, 1987년 6월항쟁의 빛 뒤로 다시 허망한 군사독재 연장이라는 어둠이 이어졌으니, 이번 광화문 광장의 빛 뒤로 다시 또 어떤 어둠이 따라올지 모른다.

만약 이번에도 어둠이 옷만 갈아입고 다시 권력을 쥔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 자체로 항구적 미망(迷妄)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는 어떤 것일까? 우리가 합의해가야 할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이어야 할까? 이미 고전이 된 두 편의 소설을 바탕 삼아 잠시 유추해보자.

▲조지 오웰 ‘동물농장’의 만화.
▲조지 오웰 ‘동물농장’의 만화.

전체주의의 폭력을 넘어서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을 발표한 것은 1945년 8월이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바로 그때이다. 오웰은 소련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이 소설은 농장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켜 인간 농장주를 쫓아내는 장면을 서두에 배치함으로써 절대권력이 장악하고 있던 소련 사회를 상상적으로 내파(內破)해간다. 소설은 지능이 뛰어난 돼지가 농장 지도자가 되고, 다른 동물들은 능력에 따라 살아가고, 자연스럽게 농장 이름도 ‘동물농장’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하지만 착취자 인간을 추방하면 모든 동물이 평등하게 살 것이라 믿었던 애초의 믿음은 뭉개지고, 농장은 도리어 ‘똑똑한 돼지’가 통치하는 독재 체제로 굳어져간다. 결국 ‘동물농장’은 그들 스스로 ‘악(惡)’으로 규정했던 상태로 처절하게 되돌아간다. 오웰은 혁명의 변질, 독재와 숙청 등 공산주의의 부정적 역사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의 칼을 댄 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풍자소설로, 권력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명편이다. 오웰은 현대 국가에서 운용되는 권력의 속성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의 가능성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날카로운 정치소설이자 인류가 귀담아들어야 할 윤리적 선언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물농장’에서 일어난 권력 집중 혹은 타락의 현상은 과거 완료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발생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을 풍부하게 보여주는 권력의 은유로 기능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전체주의 사회가 형성되고 관철되어가는 과정을 우화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도처에 존재하는 독재 권력의 징후들을 비판하고, 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를 역설한다. 20세기 초 전체주의 흐름을 바라보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꿈꾸었던 오웰은, 처음 의도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권력이 왜곡되거나 타락하면 국민들을 감시와 압제 아래 두게 될 뿐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우리는 전체주의적 폭력과 싸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대로부터 강대국의 침입에 맞서 싸웠고, 일제강점기에는 제국에 시달리면서도 전체주의에 동화되지 않고 해방을 맞이했으며, 그 후에도 길고도 지루한 독재 체제와 싸워왔다. 정유년의 우리 국민들이 선택하게 될 정치권력은, 이러한 전체주의적 징후를 멀찍이 벗어나, 속절없이 무너져가는 나라를 바로잡아주었으면 한다. 올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나라는 바로 이 전체주의의 폭력과 가장 거리가 먼, 소통과 평등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의 표지.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의 표지.

테크노피아의 미망을 딛고

서기 2545년의 영국 런던, 인류는 고도로 발달한 테크놀로지로 인해 질병, 죄, 가난, 고통, 슬픔 등을 경험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분이 우울해지더라도 ‘소마’라는 약만 먹으면 곧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다. 인류는 인공적으로 부화되고 기계의 조작에 의해 철저하게 양육된다. 참으로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이다. 그렇게 태어난 인류의 뇌리에는 자신의 고향이나 부모는 물론, 개인의 성정이나 트라우마조차 처음부터 조작된다. 연애나 신앙 따위는 아예 억압되어버린다.

그러나 이 ‘멋진 신세계’는 반어적(ironical) 실체임이 곧 드러난다. 작품의 주인공인 존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상상력과 예술적 직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작가는 존을 통해 인류 사회에 다가올지 모르는 재앙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1932년에 발표되어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가상소설이다. 테크놀로지가 발달하여 모든 인간이 인공적으로 관리되는 사회를 예견하고 그 부작용을 경고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복제인간’을 다룬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과학기술의 유토피아가 가지는 허상을 보여주는 소설의 압권으로 평가된다. 아무튼 이 놀라운 신세계는 과학기술의 맹목적 발달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이 창작된 1930년대는 세계 대공황과 전체주의의 확대로 인해 서구사회의 몰락이 가시화되던 때였는데, 헉슬리는 과학기술이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오는 것을 목도하면서 과학기술이 극한적으로 발달한 미래의 ‘반(反)유토피아’를 그려낸 것이다. 지금 우리는 헉슬리의 비판과 예견이 정확한 결과로 실현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과학기술 자체를 부정하고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록 우리가 인간적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멋진 신세계’를 선망하지 말고 과학기술의 발달이 어떻게 인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되물어야 한다. 이때 우리는 편의와 안락만을 강조하는 테크노피아가 오히려 더 비극적이고, 불완전한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고 갈등하고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멋진 신세계’임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과학기술의 발달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만들어낼 세계의 모습이 결코 이상적이지 않음을 제시함으로써, 정말 우리가 지켜가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존이 주창했던 대로, 우리는 참된 ‘멋진 신세계’를 위해, 테크놀로지나 물리적 편의만이 아닌, 상상력과 예술적 직관을 발전시켜가야 한다. 지향과 가치가 다르다고 하여 곧바로 모멸과 불이익을 주는 속 좁은 정치권력 대신, 창의적 상상력과 직관의 다양성을 허락하고 오히려 장려함으로써 한 사회의 풍요로움을 구가할 줄 아는 그런 폭넓은 정치권력을 우리는 갈망한다. 올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나라는 바로 이 테크노피아의 환상에서 거리가 먼, 따뜻함과 연대가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당신들의 나라’ 이제는 그만

미안하지만 ‘우리나라’는 ‘당신들’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나라다. 올해는 정말 지난 세월 한국 사회를 음지에서 주물렀던 어둠의 힘을 이겨내야 한다. 전체주의와 테크노피아의 미망을 넘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소통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정당한지를, 이미 고전이 된 20세기의 저작들이 보여주지 않는가. 정유년의 대한민국을 ‘우리’의 나라로 되찾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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