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D-5: 대한민국의 변화를 기대한다.

입력 2016-09-22 10:58 수정 2016-09-2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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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완(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찍이 ‘고작’ 법 하나가 대한민국을 이렇게 뒤흔든 적은 없었다. 지난 몇 달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위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청탁금지법은 항상 빠지지 않는 단골 주제였다.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된 관계로 가히 융단 폭격에 가까운 언론의 비판이 쏟아졌다. 경제계에서는 청탁금지법이 부정 청탁 근절을 앞세워 오히려 우리 경제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반대하였다. 심지어 한국경제연구원에서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 연간 11.6조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보고서를 냈다. 우리나라 기업이 지출하는 연간 접대비가 9조 원 내외인데도 말이다.

청탁은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어떤 일이 있을 때 늘 아는 사람을 찾아 부탁을 하고, 아는 사람이 없다면 제3자를 통해서라도 부탁을 넣는 경우도 일상 다반사다. 이렇듯 청탁이 일반화되다 보니 대한민국 사람들은 누군가의 ‘공격적 청탁’으로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빠지지 않을까를 노심초사하게 되는 집단 불안 강박증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강박증을 해소하기 위해 ‘방어적 청탁’을 하게 된다. 박재완 전 장관은 칼럼에서 이러한 현상을 쏠림(tipping)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청탁은 대한민국 기업의 사업 모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사전 규제적 성격의 행정 규제가 강하고, 사후 규제적 성격의 사법 규제가 약한 나라이다. 따라서 해당 기업과 관련된 규제 담당기관의 공무원만 자기편으로 만들어 놓으면 대한민국만큼 기업하기 편한 나라도 없었다.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기관에서 ‘KT장학생’, ‘SKT장학생’이니 하는 말은 관계자들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러한 이유로 청탁금지법은 가히 대한민국 국민의 생활 방식과 기업의 업무 방식에 일대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는 법률로 평가할 수 있다. 유명한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자신의 책 ‘자유주의적 평등’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정부도 그 정부가 통치하고 충성을 요구하는 시민들 모두의 운명을 평등하게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 정부는 타당하지 않다. 평등한 배려는 정치공동체의 최고의 덕목이며, 그것이 없는 정부는 오직 독재일 뿐이다.”

부정한 청탁은 공공기관에 의한 재화의 배분을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하여 평등한 배려와 존중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위이므로 청탁금지법의 입법적 정당성은 당연히 인정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로는 청탁금지법의 입법 취지에 대해서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청탁금지법을 잘 시행하는 일만 남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부정청탁에 대한 규제와 동시에 부정청탁을 양산하는 원인을 근절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부에 집중된 사전 규제권한을 완화하고, 사법부에 의한 사후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여 한다.

둘째, 청탁금지법을 불편부당하게 운용해야 한다. 특히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를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이는 검찰 개혁과도 연관이 있다.

셋째, 청탁금지법의 명확성을 높여야 한다. 현재 법해석상 가장 혼란을 많이 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직무와 관련된 금품수수인데, 그 직무 관련성의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무 관련성과 직무 관련자를 시행령에서라도 명확하게 네거티브 방식으로 정의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학교를 예로 들면 직무 관련자를 학생과 학부모 등으로 명확하게 한정하여 정의하고, 직무도 학생 교육과 관련된 것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청탁금지법은 대한민국에 깊이 뿌리내린 인간관계에 기초한 청탁문화에 도전하는 거대한 실험이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대한민국은 투명한 사회로 비약적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위해 대한민국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좌영길 기자 jyg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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