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공공기관장 자리와 무게

입력 2015-12-0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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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

성경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세 하인에게 각각 은화 한 닢씩을 주었다. 첫 번째 하인은 장사를 하여 돈을 열 배로 불렸고, 두 번째 하인도 다섯 닢을 벌었다. 그러나 세 번째 하인은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며 은화를 땅에 묻어 두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은 첫 번째와 두 번째 하인을 칭찬하면서 상을 내리고 더 큰일을 맡겼다. 그러나 돈을 묻은 세 번째 하인은 크게 나무라고 내쫓아버렸다. 이 이야기는 기업가의 경영 성과, 책임경영을 강조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주어진 자리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경영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의미다.

지난주 공공기관 기관장 워크숍이 열렸다. 성과 중심 조직운영이 공공기관 정상화의 핵심 과제다. 간부직을 민간에 개방하는 개방형 전문계약직제 도입,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간부직에서 비간부직으로 단계적 확대 등 다양한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이 논의되었다. 공공기관을 중장기 비전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기관장 중기성과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공공기관의 전문성 약화, 단기 성과 위주의 운영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다. 워크숍에 참석한 모 대학 교수는 “공공기관장이 업무 성과에 따라 연임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2007년 이후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법률에 의해 3년으로 정해져 있으나, 실제로 임기를 채우는 기관장은 많지 않다. 스스로 물러나기도 하고 정권교체 등 외부 요인에 의해 떠나는 경우도 있다. 지난 5월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최근 세 번의 정부 아래 운용된 177개 공공기관 기관장 재임 상태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관장이 임명된 후 채 두 달이 되기도 전에 자리를 떠난 공공기관이 3곳이나 됐다. 근속기간이 6개월도 되지 않는 기관장 또한 많았다. 게다가 1년에 평균 46일은 공공기관장이 공석인 상태로 집계됐다. 여러 사정이 있겠으나, 1년에 한 달 반 넘게 기관장의 업무 공백이 발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현안 과제 추진이나 장기 사업계획 수립 등에 차질이 발생하고, 공공기관 정상화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시민회의 관계자는 “기관장의 잦은 교체와 단명으로 공공기관의 경영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경영 성과는 물론 대국민 신뢰도도 추락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민간에서는 최고경영자(CEO)가 연임하는 사례도 많다.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은 5회 연임하면서 15년간 전문 CEO로 활동했고,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경영 연속성은 민간뿐만 아니라 공공 부문에서도 중요하다. 단기 실적에 급급하면 인기영합주의에 빠질 위험이 크다. 공기업도 중장기 비전이 필요하다. 최근 필자는 재연임되면서 많은 축하와 관심을 받았다. 감사한 마음과 함께 부담도 크다.

공공기관장 자리는 결코 쉽지 않다. 공무원은 아니나 공무원에 준하는 엄격한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다. 공기업이 하나의 독립된 기업으로서 성과가 강조되고 있으나 민간처럼 마냥 수익만 추구할 수도 없다. 공기업의 자율성도 중요하나, 공공재를 다루는 만큼 책임과 성과, 자율과 통제 사이에서 균형과 중용을 지켜야 한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임원에 대해 낙하산, 관피아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파리 목숨’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공공기관에 개혁 바람이 불면서 공공기관 임원의 ‘인기’가 예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 ‘공기업 직원들이 임원 승진을 꺼린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와 짧은 임기, 정부 통제가 강화되면서 임원 권한이 대폭 축소된 점 등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공공기관 기관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스스로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 총선 출마 등으로 인해 연말이나 연초에 기관장 자리가 비는 공공기관이 20곳을 넘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국가를 위해 본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은 박수 받을 일이다. 다만, 다른 자리로 가기 위해 잠시 거쳐가는 발판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 업무를 하는 동안에는 소신껏 책임을 다해야 하고, 떠난 뒤에도 업무 공백이 없도록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공공기관장의 ‘책임경영’이 국민들이 바라는 진정한 ‘공공기관 정상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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