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기 위해 복지 늘려야” 장하준의 ‘공동구매 복지론’

입력 2015-01-2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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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인터뷰

밖에서 비판하는 건 쉽다고 지적을 받기도 한다. `밖`이란 국내가 아닌 해외, 그리고 정책이나 산업 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을 하는 존재라는 구분이다. 경제 현상을 잡아 분석하고 이것을 학문적으로뿐만 아니라 대중적 글쓰기에 적용하는데 부지런히 나서 온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에 대한 평가의 일부다.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는 그런 평가 개의치 않을 듯했는데 "다 제 탓"이라고 했다. "제가 제대로 글이나 말로 설득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겸양일까 강한 의지일까.

장하준 교수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논리를 일관되게 구술했다. 현 상황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이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실용적인 대안도 내놓았다. 기자가 "흑묘백묘(黑猫白猫;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 샤오핑의 유명한 실용주의 노선) 아니냐?"라고 했더니 "정확하게 맞다"고도 했다. 전화 인터뷰는 지난 26일 오전(영국 현지시간) 약 2시간 가량 전화 통화로 진행됐다.

가장 많이 거론된 주제는 세금과 복지, 불평등이었고 우리 경제 얘기를 하다보니 부동산 정책 얘기를 많이 했다. 삼성 등 대기업 집단에 대한 접근은 생각보다 더 파격적이었다.

-연말정산 논란이 증세 논란을 거쳐 이제는 보편적 복지, 무상복지를 없애자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흐름을 어떻게 보는가.

▲ 옳지 않은 흐름이다.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출산률 세계 최저인 현 상황은 우리나라가 매우 불행해져 있고 복지는 형편없다는 증거이다. 복지 수요는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세금을 더 걷어가는 것이 싫으니 복지도 덜 받으면 된다는 식의 주장은 우리 사회를 더 불행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복지할 재원은 없는데도 약속한 복지를 해야하니 어떻게든 서민들로부터 세금을 늘리려 한다. 그러면서도 증세는 아니라고 하는데.

▲ 공짜 복지는 없다. 소득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적게 버는 사람도 부가가치세는 내게 된다.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 결국 사회보험을 돈을 내고 구매하는 것이 세금을 내는 것인데, 물건을 살 때처럼 공동구매 증세를 하면 어떻겠나 싶다. 사회보험 가격을 내리는, 복지 가격을 낮추는 증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뜻이다.

시장에 맡겨놓기만 해서는 불평등이 해소될 수가 없다. 우리는 세금 이전의 규제, 이를테면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 등의 제도를 두어 왔지만 세금을 통해 복지를 재분배하는 건 거의 못 하고 있다. 유럽은 다르다. 세금을 걷어서 재분배하기 전의 통계를 보면 유럽이 오히려 미국보다 불평등도가 높지만 시장 규제를 덜 하다가 결과가 나오면 정부가 세금을 통해 재분배해 불평등을 해소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규제는 다 풀어야 한다고 하고 각국과 자유무역협정(FTA)도 줄줄이 맺어 시장의 불평등이 커질 상황에 세금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등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복지에 퍼주다가 재정파탄 났다는 분석은 맞는가.

▲ 그렇지 않다. 오히려 복지를 제대로 안 했다. 그리스가 급진좌파 시리자를 지지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 신기할 정도로, 기업으로 치면 파산 상태다. 기업이 파산하면 개인 직원들 집까지 팔아서 돈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듯 그리스도 지금이야 유로존 탈퇴(그렉시트)까지 거론하지만 사실은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부채 탕감을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리스가 아니라 사실 스페인이다. 비슷한 상황인데 스페인은 유로존에서 경제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요구를 해도 부채 탕감을 해줄 수 없다. 그리스는 해주고 스페인은 해주지 않으면 논란이 생길테니 아직 잘 모르겠지만 유로권이 붕괴를 막고 절박하게 공존하려고 하는 한 어떻게든 어려운 회원국들을 구제하면서 끌고 나갈 것 같다.

-영국 경제는 어떤가. 회복 기운이 돈다는 외신 기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 겉으로만 그렇다. 1인당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아직 2007년 평균 수준을 회복 못했다. 빈곤률도 올라갔다. 정부가 통화량 늘리고 집 사는데 보증 서주고, 이런 규제 완화를 틈타 각국의 부자들이 런던 부동산을 사면서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고 있는데 그걸로 실물 경제가 다 좋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도 부동산 띄워서 경기를 부양하려고 하고 있는데.

▲과거엔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고 도시화도 진행돼 부동산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동산이 뜨면 경제가 좋아지나보다 하는 기대감이 여전히 있다. 그러나 경제가 좋아지니까 부동산도 뜬 것이다. 아주 단기적으로 부동산 부양의 약발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절대 장기적으로는 안 된다. 집 사라, 부자되라는 외침은 가계부채만 늘렸다.

-그럼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 경제 성장의 동력이 사라진 것이다. 조선, 철강 같은 과거 주요 산업들은 지고 있고 휴대전화도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지 않은가. 선진국과 경쟁할 신 산업 경쟁력도 없다. 중국의 성장과 엔저로 무장한 일본에 밀리다 보면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산업 정책을 너무 등한시해 왔다. 또한 비전이 없다. 정부와 국민, 기업이 앞으로 가야할 방향, 비전에 대한 합의를 해야 하고 대화를 해야하는데 그런게 안 돼 있다.

-대화라는 것이 어느 나라든 다 어렵지 않은가.

▲ 지금은 안정적인 핀란드도 좌우 내전으로 3만명이나 사망한 경험이 있고 1944년까지 공산당이었던 사람에게는 투표권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해 지금에 이르렀고, 스웨덴도 1920년대엔 파업률이 굉장히 높은 나라였다. 그러나 소모전을 하다간 공멸한다는 인식을 하면서 바뀐 것이다. 오래 걸렸다.

-중앙은행과 정부의 정책은 하모니를 이루는게 맞지만 정부가 한국은행에 노골적으로 금리인하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는가.

▲ 우리나라가 균형 재정에 엄청나게 신경을 쓴다. 그래서 재정적자를 너무 두려워하다 보니 돈을 많이 풀 수가 없다. 그러니 중앙은행에 자꾸 압박을 넣는 것이다. 그러나 이자율이 벌써 연 2.0%인데 지금까지도 효과가 없었고 더 내려도 효과가 없다.

-삼성은 어떤 식으로 다음 먹거리를 마련할까.

▲ 반도체와 휴대전화로 10년은 먹고 살겠지만 그 다음이 딱히 준비돼 있는 것 같지 않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일이 틀어져(삼성의 의도와는 다르게라는 의미로 해석) 단기주주들의 압력이 심해지면 더 문제가 된다.

- 삼성의 경영권은 아들로 넘어가는 것이 맞는가.

▲ 그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삼성이 유지되는가가 국가 경제에 있어 중요한 것이다. 애플도 스티브 잡스 사후에 칼 아이칸이 들어와 자사주 매입을 늘리라고 압박을 했고 결과적으로 자사주 매입에 나선 경우가 있다. 단기주주에 휘툴리지 않도록 소유 구조를 깨지 않을 필요가 있다. 국유화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경영권을 승계할 자녀들에게 상속세를 주식으로 받아서 국민연금이 갖고서 지배 주주 역할을 하는 것, 또 순환출자나 금산분리 같은 조건들을 면제해줄테니 주식을 헌납하라고 해서 국유화할 수도 있다.

-너무 이상론이라는 지적이 있다.

▲물론 이상론이긴 하다. 하지만 주주 자본주의의 논리에 편입되고 삼성이 백기투항하면 우리 경제에 타격이 굉장히 클 텐데 그냥 두자는 것도 이상론 아닌가. 신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작은 기업이 아니라 기업집단일 때 가능하고 효율적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실용주의로 보면 된다. 독일에도 폭스바겐법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폭스바겐이 어려워지자 국유화해 회생시켰고 다시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어려워졌다. 그걸 니더작센주에서 다시 19%의 지분을 사 인수했고 이후 인수합병(M&A)이나 공장 폐쇄 등 중요한 결정은 주 정부가 허락해야 하도록 했다. 우리도 삼성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국유화하고 감시하는 삼성특별법을 만들 수 있다.

-순환출자, 금산분리와 관련해서 너무 느슨하게 보는 것이 아닌지.

▲ 순환출자는 역사적으로 봐야 한다. 미국이 전후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본주의 법들을 만들 때 지주회사를 금지했다. 일본의 경우를 보니 안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집단이 되어야 위험도 분산할 수 있고 유치산업도 보호할 수 있다. 그래서 기형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순환출자 구조다. 재벌이 나빠서 그렇다, 라는 것보다 역사적으로 어쩔 수없이 형성된 것으로 봐야 한다. 또 금산분리했다가 경쟁력이 오히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스웨덴 한델스방켄(Handelsbanken)의 경우 은행(자본)을 기본으로 기업 집단이 형성된 경우인데 영국과 미국 식으로 돈 장사만 하는게 아니라 은행이 실물 경제에 투자하고 기업도 키운다. 그러니 금산분리가 무조건 나쁘다, 좋다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 삼성은 특수한 경우인데 금산분리가 문제가 된다면 소유는 인정해서 기업 집단구조는 유지하되 갖고 있는 은행이 계열회사에는 대출을 못한다는 규제를 두면 안 될까. 제도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방향을 설정하는지가 중요하며 그걸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너무 미국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한다. 오히려 경제 규모 작을 때가 더 줏대가 있었다.

-최근의 고민은 무엇인가.

▲ 문제없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 덴마크나 네덜란드 같은 북유럽 나라들은 행복지수가 높은데 우리나라는 왜 불행할까 고민한다. 청년들은 실업자 되는게 두려우니 의대나 법대만 가려 하고 공무원이 되려고 달려든다. 진취적인 꿈도 꾸지 않는다. 노인들이 이렇게 많이 자살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또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이제 아니다. 많이 노력했지만 워낙 불평등한 나라인 브라질에서 가장 호황을 누리는 산업은 기업인 납치다. 부자 기업인들은 방탄차, 기관총 갖고 다녀야 한다. 불평등 심해지면 우리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성장이 답은 아니다. "성장하면 다 해결된다"는 성장 지상주의,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는 버려야 한다. 그러면서 재벌은 나쁘고 기업집단은 해소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리고 발상의 전환을 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 서로 대화가 되어야 한다. 영국의 경우도 나이젤 파라지 영국독립당(UKIP) 총재가 이민자 반대 주장을 펴면서 인기를 얻는 듯 한다. 그건 영국도 불행하다는 증거다. 대화가 되고 같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식 해법, 그러니까 고율의 소득세를 물리고 그걸로 소득 재분배를 하면 행복해질까.

▲그렇게까지 급진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조세회피처에 탈루된 세금을 거두고 해도 충분히 재분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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