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명품에 병든 대한민국, 업체만 살찌운다

입력 2011-09-30 11:05 수정 2011-09-3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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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1명에 점원 1명으로 고객 줄세우기

24일 오후 1시 타임스퀘어 명품관 내 루이비통 매장에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매장을 둘러보기 위해 고객들이 줄을 지어서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줄은 복도 끝까지 이어져 족히 30여명은 넘어 보였다. 루이비통은 매장 직원 한 명당 고객 한 명을 상대하는 ‘1대 1 고객 서비스’를 국내 처음 도입했다.

예컨대 루이비통 매장 직원이 5명이면 출입 가능 고객수도 5명으로 맞추고 나머지 고객의 출입은 제한하는 것이다. 전 세계 루이비통 매장이 경쟁사보다 우월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지만 직원과 고객 비율을 1대 1로 맞춰 출입시키는 곳은 한국뿐이다.

한국 명품 소비자들이 서비스에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 본사와 협의해 지난해 3월부터 본격 시행하고 있다는 게 루이비통 측 설명이다. ‘유별난 한국인의 명품 사랑’에 말 그대로 ‘유별나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24일 오후 1시 타임스퀘어 명품관 내 루이비통 매장 앞에 고객 30여명이 줄을 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매장 직원 한명당 고객 한명을 상대하는 '루이비통의 1대 1 고객 서비스' 때문에 입장하는 데에만 평균 30분 이상 걸린다.
◇루이비통 3초백에 샤테크 열풍까지= 최근 글로벌 컨설팅업체 맨킨지는 우리 소비행태를 돌아보게 하는 보고서를 냈다. 가계소득에서 명품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를 넘어서며 일본(4%)을 제칠 정도로 한국인에게 명품소비가 ‘일상화’됐다는 내용이다.

한국 명품시장은 2006년 이후 연평균 12%씩 성장해 지난해 45억달러(4조8000억원) 규모로 커졌고 이런 급신장세가 3~5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연간 명품에 100만원 이상을 소비하는 소비자 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명품을 갖는 것은 예전처럼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는 데 동의한 응답자가 지난해 21%에서 올해 45%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대단하다. 한국에서 루이비통 가방은 ‘3초 백’, 구찌 가방은 ‘5초 백’으로 불린다. 거리를 걷다 보면 3초, 5초에 한 번씩 마주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지난해에는 샤테크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샤테크는 샤넬 백을 이용한 재테크를 뜻하며 백을 사놓으면 매해 국내 판매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재판매한 돈으로 새 백을 살 수 있을 만큼 투자 가치가 높다는 뜻에서 붙여진 용어다.

루이비통은 유별난 한국인들을 위해 전 세계 루이비통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줄세우기’를 시작했다. 까다롭고 민감한 한국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프라다도 줄세우기에 동참, 한국인에게 유별난 서비스를 제공한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루이비통 3초백, 샤테크 등의 신조어를 탄생시키는 것도 모자라 루이비통의 명품매장 1대1서비스 등을 보면 한국인의 명품사랑이 어느정도인지 예견케한다”며 “글로벌 명품 업체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곳은 당연히 한국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봉’입니다 ‘베짱장사’=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가득하다보니 명품 브랜드는 국내에서 배짱 장사를 하고 있다. 같은 모델을 다른 나라에 비해 최고 100만원까지 비싸게 팔고 있다. 명품업계 관계자들 조차도 한국 가격이 더 비싸다고 인정할 정도니 한국 소비자들은 명품업계의 ‘봉’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올해 8월 환율 기준으로 샤넬, 루이비통, 구찌 등 명품 브랜드의 국내 제품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최대 100만원 이상 비싼 것으로 확인됐다. 넬의 ‘클래식 플랩백’은 국내 백화점 매장에서 550만원에 팔리고 있지만 프랑스 몽테뉴거리의 명품숍에서는 약 438만원으로 한국보다 112만원이 저렴하다.

루이비통도 마찬가지다. 대표 베스트셀러 모델 ‘갈리에라(GM)’는 국내에서 227만5000원에 팔리고 있는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각각 45만원, 77만원 저렴하다. 구찌 스트럽백도 국내에서 358만원에 팔리고 있는 반면 미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100만원, 86만원 싸게 팔리고 있다.

똑같은 제품인데 유독 한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가격으로 팔리는 이유는 명품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이 투철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사려고 하기 때문이다. 특히 명품 업계에서는 한국에선 가격을 올리면 오히려 더 잘 팔린다는 통념이 뿌리 깊게 자리잡았다. 보통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른바 ‘베블런 효과’라는 기이한 현상이 명품 산업에서 두드러진다.

배가 부른 명품 업체들은 국내에 대한 배려심은 전혀 없다. 명품 브랜드들은 미국 등지에선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사회공헌기금으로 내놓으면서도 한국에선 전혀 기부를 하지 않거나 극히 적은 금액을 내놓는 실정이다. 루이뷔통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4273억원에 영업이익 실적 523억원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의 84%가 넘는 440억원을 중간 배당을 통해 본사에 지급했다. 고액 배당을 통한 이익금 빼내가기는 버버리, 페라가모, 프라다도 마찬가지였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외국 명품업체들이 한국의 ‘명품 열풍’에 단물만 빼먹고 있다”며 “명품 선호풍조로 명품업체들만 대박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봉’부추기는 재벌가 딸들= 재벌기업들의 명품 브랜드 모셔오기 경쟁이 진흙탕 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국내 시장은 대표 면세점을 이끌고 있는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과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즉 재벌가 딸들이 명품 입점을 두고 법정공방을 벌일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명품시장이 해마다 30% 이상씩 신장하며 연 5조원대를 형성, 현재 세계 4대 명품시장으로 부상했기 때문에 이들 면세점이 명품시장 공략에 사력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업계 측 분석이다. 하지만 대기업이 자체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보다 과열양상을 보이는 소비 성향에 기대 외국의 명품유치에 목 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재벌기업이 푸대접을 받으면서까지 명품 모여오기에 열을 올리는 통에 외국 업체들의 베짱 장사가 도를 넘고 있다”며 “재벌가가 직접 나서 재벌명품 패션을 선보이고 명품에게 특혜 혜택을 주면서까지 입점시키는 등 한국인의 광적인 명품 열풍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벌가의 ‘명품특혜’는 하루 이틀일이 아니다. 명품 브랜드를 무리하게 끌어오기 위해 턱없이 낮은 수수료를 제시해 불공정 시비에 휘말리는 게 다반사다. 최근에는 신라가 파격적인 수수료 혜택을 주고 루이비통 인천공항점을 입점시켜 마음이 상한 샤넬과 구찌가 신라면세점에 철수하는 사태도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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